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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닭도리탕 사건의 교훈

movigo 2020.03.23 13:42 조회 수 : 24

  국립국어원이 일제의 잔재를 없애겠다며 순우리말일 수 있는 '닭도리탕'을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닭볶음탕'으로 바꾼 사건은 이후에 국립국어원이 신나게 까이는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단순히 이를 까는것에서 그치면 될까? 국립국어원은 현재이 삽질을 잘한 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면 제 2의 닭도리탕 사건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립국어원의 삽질을 막아주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일으킨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

  이 사건이 논란이 된 것은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의 どり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리'가 일본어에서의 차용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민중서림 엣센스 일한사전에 의하면 どり는 새의 허파를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의 요리는 닭의 허파가 들어가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에는 이 요리가 진짜로 닭의 허파를 요리한 음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당 요리에 대한 기록이 20세기에 들어서 나타난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1. 재료가 닭의 허파에서 닭의 살로 바뀌기 전에 일본어의 영향으로 요리 이름의 부분이 바뀌었다.

  2. 이 요리는 일제시대에 발생했고, 최초로 기록될 쯤엔 재료가 바뀐 상태였다.

  3. 이 요리는 일본으로부터 넘어왔고, 그 요리의 기나긴 역사 동안 재료가 바뀌었다.

 

  하지만 일제시대 전에 이 요리가 존재했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1과 2를 증명할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다. 3은,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의 요리에 대해 모르는 내가 당장에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3이 맞다고 한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지만 요리의 이름이 '순화'되지 않은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치킨, 라면, 파스타, 햄버거, 우동, 돈까쓰, 카레, 콜라(음식이긴 하다), 와인 등, 셀 수 없이 많은 요리가 발음이 살짝 바뀐 형태로 그대로 들어왔고, 들어온다. 그런데도 일본 요리, 그것도 극히 일부의 일본 요리의 이름만을 일제의 잔재로 간주하고 바꿔버리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인가 의문이다.

  どり가 일본어로 '새'라고 친다면 '닭새탕'이 되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것은 근거가 될 수 없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합성어는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영어의 'woman'이 하나의 예다. 이 단어는 'wife'의 옛 형태인 'wīf'와 당시 '사람'의 의미를 가지던 'mann'를 합성하여, 당시 'wīfmann'의 형태였다. 그런데 굳이 이미 사람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단어에 다시 사람이라는 의미를 더한 이유가 학자들에겐 의문이다. 게다가 남성명사인 'wīf'와 중성명사인 'mann'을 억지로 합성해야 할 동기가 무엇이였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어는 존재하고 여전히 쓰인다. 이렇게 다른 언어에도 논리적으로 이상한 단어들이 있는 것을 감안해보면, 논리적 이상이 이 바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바뀐 단어도 문제다. '닭볶음탕'을 만들 때에는 닭을 볶지 않는다. 비슷한 문제가 '오뎅'을 '어묵'으로 바꿀때에도 일어 제기된 적이 있다. 일본의 오뎅은 생선 외에도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일부 종류의 오뎅에 근거해 어묵으로 바꾸는 것은 단어의 원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이 '일재의 잔재'를 뿌리뽑는 데에는 혈안이 되어있지만, 정작 그것을 대체할 방법은 대충 내놓는 행동은 대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그놈의 '순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극단적인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효과적이다. 국립국어원은 일본어와 영어에서 기원한 단어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열심이지만, 한국어 단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사대의 잔재, 한자어는 못본척 해준다. 이는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유사하다. 기술력과 군사력이 압도적인 서양 세력과 이를 받아들인 일본에 대해서 문을 걸어잠궜다. 그리고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존재하는 것을 선택했다. 현재 국립국어원의 행동을 보면 중국의 것을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외의 것은 모두 하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대주의의 연장선에 있음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사대와의 차이는 국립국어원은 한국 문화 역시 우월하다고 본다는 것 정도다.

  현대는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져 있다.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다른 나라에 공급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위기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한 나라의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논의하고 의견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렇게 전 세계와의 소통이 필연적인 세상에서 중국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세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걸어잠그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순화'는 이것을 대표한다. 과연 순화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에게 유용한 것일까? 과연 이것에 세금과 학자들의 시간을 갈아넣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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